김난도 저
불안하니까 청춘이다
막막하니까 청춘이다
흔들리니까 청춘이다
외로우니까 청춘이다
두근거리니까 청춘이다
그러니까 청춘이다
시작하는 모든 존재는 늘 아프고 불안하다. 하지만 기억하라, 그대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아무리 독한 슬픔과 슬럼프 속에서라도, 여전히 너는 너야. 자학하지마, 그 어떤 경우에도, 절, 대, 로.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젊음은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
가능성 때문이다. 연마하기에 따라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광채를 내뿜을 원석이다.
아슬아슬한 경계의 시기이자, 입시준비로 유예됐던 사춘기의 성장기적 문제가 한 번에 터져 나오는 폭발의 시기
열정이 존재를 휘두르고 기대가 존재를 규정하는, 불일치의 시기
인생에서 가장 화려하면서도, 가장 어두운 시기
무언가 이뤄야 한다는 강박에 휩쓸린 탓에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춰 서는 것조차 불안해하며, 정작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은 깨닫지 못한다.
반드시 찾아오게 마련인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헤어날 수 없는 자기연민에 빠진다. 결국 형편없는 생활 속에서 나태를 낭만이자 로망으로 미화하며, 금쪽 같은 청춘의 기회를 허망하게 소모해 버린다. 나름 무척 똑똑하게 행동하는 것 같지만, 인생 전반을 놓고 바라볼 때는 너무나도 바보 같은 결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차가운 지성의 언어로 미처 그들이 하지 모한 생각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더 가열차게 이런저런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처세 글이나, 대책 없는 감상으로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 하는 근거 없는 낙관으로 가득한 글이 아니라 그대들의 영혼을 우리는 마음의 글, 그대들의 머릿속에 내리치는 따끔한 죽비 같은 글
‘큰 지식을 얻고’, ‘큰 책임을 느끼고’,
자신의 위치에서 나의 당부를 되새기는 적극적인 독서
모쪼록 나는 그대들이 더 어리석었으면 좋겠다. 너무 영리하게 코앞에 있는 단 1%의 이익을 좇는 트레이더가 아니라, 자신의 열정에 가능성을 묻어놓고 우직하게 기다릴 줄 아는 투자가 였으면
눈앞에 보이는 결승점을 향해 전력질주 한 후 지쳐 헐떡이며 퍼져버리는 100m 달리기 선수가 아니라, 저 멀리 열망하는 목적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는 우둔한 답사자 였으면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 뛰는 청춘
인생시계
내 책상 위에는 가지 않는 탁상시계
매년 내 생일이 되면, 18분씩 앞으로 시계바늘을 옮긴다.
60세는? 저녁 6시다. 직장인들이 일을 마치고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가거나, 저녁시간을 즐기려는 때다. 참 절묘하지 않은가? 인생80을 24시간에 비유하기를 좋아한다.
24시간은 1,440분, 80년으로 나누면 18분, 1년에 18분, 10년에 3시간.
인생에 너무 늦었거나, 혹은 너무 이른 나이는 없다.
월급이 적은 쪽
나를 필요로 하는 곳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 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열망은 힘이 세다.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열정과 보람을 기준으로 삶을 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좁고 험난한 길을 사서 가는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어느 순간이 되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리에 우뚝 서있다. 열망의 힘
미래가 이끄는 삶, 꿈이 이끄는 삶, 열망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열망을 뜻하는 영단어 ‘passion’은 아픔이라는 의미의 ‘passio’를 어원으로
열망에는 아픔이 따른다. 눈앞에 당장 보이는 달콤함을 미래의 꿈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데서 온다.
돈을 위해 열정적으로 일한 것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일했더니 돈이 생겨 있더라.
그대는 어떤 꽃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가?
문제는, 꽃에 대해서는 그렇게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으면서 자기 인생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
청춘들은 대부분 가장 일찍 꽃을 피우는 ‘매화’가 되려고만 한다.
인생에 관한 한, 우리는 지독한 근시다. 바로 코앞밖에 보지 못한다.
잊지 말라. 그대라는 꽃이 피는 계절은 따로 있다.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대,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이다. 다소 늦더라도, 그대의 계절이 오면 여느 꽃 못지않은 화려한 기개를 뽐내게 될 것이다.
오히려 옛사람들은 인간의 세가지 불행 중 첫 번 째로 소년등과를 꼽았다.
소년등과한 사람치고 좋게 죽은 사람이 없다.
너무 일찍 출세하면 나태해지고 오만해지기 쉽다. 나태하므로 더 이상의 발전이 없고, 오만하므로 적이 많아진다.
선생으로서 내가 제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일찍’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 성공하는 것이다.
인생을 마감하면서 “내 가장 큰 성취는 이것이었다.”
“그래도 내가 20대 후반에는 남보다 훨씬 잘나갔다”고 자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인생에 관한 한, 우리는 지독한 근시다. 바로 코앞밖에 보지 못한다. 그래서 늦가을 고운 빛을 선사하는 국화는 되려 하지 않고, 다른 꽃들은 움도 틔우지 못한 초봄에 향기를 뽐내는 매화가 되려고만 한다.
다들 20~30대에 무슨 직업을 가질 것인가에 만 온통 관심이 가 있지, 인생의 사회적 전성기인 50~60대에 이루어야 할 비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기억하라. 그대가 노려야 할 것은 신인상이 아니라, 그대 삶의 주연상이다.
네 눈동자 속이 아니면, 답은 어디에도 없다.
성장하면서 수없이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자꾸 닫아버린다는 것
대학에 들어와 만난 책 한 권, 선배 한 사람, 선생님 한 명, 우연한 사건 하나 때문에 그 치밀했던 계획이 송두리째 바뀌지 않았던가
상황은 변한다.
본인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대답
“선생님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하고 반문을 하며 나름대로 뭔가 새롭게 깨닫는 눈치다.
그가 자신을 반추하도록 도와주었다면 상담자로서 나의 임무는 어느 정도 수행했다고 위안
내가 내린 판단으로 상담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답을 찾아 반뭍ㄴ했을 때 가장 효과가 좋았다는 사실, 누구나 자기 가슴속에 답을 안고 산다는 뜻
높은 계단을 오를 때는 저 끝이 아니라 ‘눈앞의 한 계단’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듯 목표의 시점을 짧게 잡고 하나씩 실천
나태. 목표와 수단이 혼란스러우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손을 놓아버린다.
게으름의 타성. 이러면 안 되는데. 자괴감
바람직한 자세는 화살과 종이배 사이 어디쯤.
자신의 지향점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상황의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지금의 내 모습 자체가 비교적 최근까지도 전혀 내가 목표하지 않았던 나다.
나태하다는 자책, 지향점이 없다는 자괴, 바라는 것이 뭔지 모르겠다는 의문
이 불안을 동력으로, 그대는 때로 우연에 기대라.
세상은 복잡하고 너무 빨리 변해서 절대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 대신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라. 그래서 멋진 실수를 해보라. 실수는 자산이다. 대신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멋진 실수를 통해 배워라.
손쉽게 목표가 보이는 고시니, 자격증이니, 스펙이니 하는 것에 너무 쉽게 그대의 무한한 가능성을 함몰시키지 말아다오.
단지 마땅한 대안이 없다거나,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시험 준비를 시작하지는 말라.
자기 가능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포기하는 순간, 아주 쉽게 자기 형편에 맞는 시험 준비를 시작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심 공부하는 것이 제일 편해져버린 것.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는 것도, 끈질기게 취업의 관문을 두드리는 것도, 공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하는 법’을 익히는 것도, 너무 어렵다.
그래서 시험 준비란 겉으로는 매우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의 전체적인 프레임에서 보면 문제를 유예하는 게으른 과정일 수도
전문자격을 취득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기 전에, 한 번 더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심사숙고 하라.
바로 일 자체의 즐거움이다.
우리의 삶은 일과 여가로 구성되어 있다. 일은 직업과, 여가는 소비와관계가 깊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소비를 누리는 것은 절반에 지나지 않으며
인생에서 우리에게 더 본질적 기쁨을 주는 것은 소비가 아니라 일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의 성취감은 좋은 물건을 샀을 때의 즐거움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
결코 당장의 안정성이나 높은 초봉에 현혹되어 직업을 선택하지 말라. 대신 그 일을 하는 즐거움을 기준으로 미래를 설계하라.
불안이 성장의 참된 벗이라는 사실이다.
어떠한 막막함도 황금처럼 소중한 청춘의 해이와 나태를 감싸는 변명의 구실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치열한 뒤돌아봄 없이 성급하게 고시에 함몰하는 것은 그대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무책임한 유기다.
가슴 떨리는 불안을 연료로,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준비하며 하루하루를 밝혀 나갔으면 좋겠다.
치열하게 그대 자신에 침잠하라.
조급해하지 말라. 그렇게 출발해도 전혀 늦지 않다.
아직 재테크 시작하지 마라.
신인 개그맨 때는 종잣돈보다 연습과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다. 나중의 성공을 위한 자기투자에 시간을 할애할 수 없게 된다. 인생의 경쟁력을 비축해야 하는 시기
책을 사고, 여행을 떠나고, 무언가 배우는 데 써라. 나중에 정말 큰돈을 만들고 싶다면, 푼돈으로 몇 년 일찍 재테크를 시작하기보다는 ‘더 나은 나’를 만드는 데 돈을 써라. 궁극적으로 최고의 재테크는 나의 가치를 높여 높은 연봉을 받는 것임
“내게 나무를 벨 시간이 여덟 시간 주어진다면, 그중 여섯 시간은 도끼를 가는 데 쓰겠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젊은 그대들에게 부족한 것은 스펙이나 학점, 자격요건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성찰이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게으른, 부지런한 나태다. 자기 성찰이 없으면 잘못된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돌진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헛된 노고를 계속하게 된다.
직접 체험하고, 많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여행을 떠나라.
체험만큼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 것은 없다. 감수성이 민감한 청춘 시절에 쌓는 체험이란 무척 소중한 것이다.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체험을 해보려고 노력하라. 그것이 비난받을 행동이거나 지나치게 그대의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책에서, 신문에서, 잡지에서, 우리는 성공하고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생각할 것.
대화는 독서만큼이나 유익한 경험의 통로다. 자기보다 많은 경험을 쌓았거나 통찰력을 갖춘 사람과 나누는 대화는 커다란 깨달음을 준다.
“여행이란 사회적 임사 체험이다.” 여행은 어느 면에서는 죽음과 유사. 여행을 떠나버리면, 내가 있던 곳의 사람들에게 나는 ‘없는 사람’, 즉 죽은 사람이 된다. 여행은 자신의 부재가 나의 지인과 공동체에 어떤 의미였나를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계기
잘한 일, 잘못한 일, 평소에는 덮어두었던 내 적나라한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라서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사람이란 객지에서야 비로소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모양이다.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는가?”
카메라와 휴대폰은 서람 속에 넣어두고, 자주 여행을 떠나라. 관광가이드 책에 나오는 명승지만 찾아 사진 찍으러 돌아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그대 자신을 만나러 떠나는, 그런 여행
목표, 방법론, 실천
때로 걸음을 멈추어보라. 그리고 진한 눈빛으로 자신을 돌아보라. 자신과의 냉철한 대면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무조건적인 성실이란, 또 그런 인생이란, 무딘 톱날처럼 얼마나 밋밋할 것인가?
문제는 이번에 이겼느냐 졌느냐가 아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내가 얼마나 성장했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조금 졌다고 상대의 승리를 인정하지 못하고 질투한다면, 그 다음 경쟁에서도 결과는 뻔하다.
중요한 것은 열등감을 건드린 것에 불쾌해 하는 데서 나아가 그것을 자기성취의 자극으로 삼는 일
소수의 의지 강한 사람들은 그것을 극복하려고 애쓴다.
열등감을 인생의 밑짐으로 삼고 살아가면 어떻겠는가? 감추거나 부정하려 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성취의 동력으로 인정하고 살아가면 어떨까? 그럴 때, 열등감은 인생은 풍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질투하는 대신 선망하라. 타인의 성취를 인정하라.
슬럼프, 그냥 게으름 혹은 나태라고 할게.
너무 오래 나태하면 안 돼. 자아가 부패하거든, 네 아름다운 육신과 영혼이 슬퍼지거든.
정말 중요한 것은 결국 자신
정말 나태에서 벗어날 참이면 코끝에 스치는 바람에도 삶의 의욕을 찾고, 그러지 않을 참이면 옆에 벼락이 떨어져도 늘 같은 상태
감정은 육체의 버릇. 햇볕을 지나치게 덜 쪼였다거나, 운동량이 부족했다거나, 술이나 담배를 많이 했다거나… 난 정말 감정에서 자유롭고 싶을 때는 5km 정도를 달려. 술은 오히려 되도록 적게 마시지, 몸이 아니라 마음을 위해서.
나아가 육체의버릇보다 더 근원적인 건, ‘목표’의문제야.
대개 일주일이나 한 달짜리 목표를
시점을 짧게 두는 게 포인트. “오늘”, “늘 ‘오늘’이 중요해!!!!”
오늘 자전거의 첫 페달을 밟고 그걸로 만족하면 돼.
늦게 자지 않고, 일찍 일어나고, 술 마시지 않고, 햇빛 아래서 많이 움직이고 걷고 뛰고, 꼭 1시간은 색소폰 연습하고, 몇 글자라도 읽고, 3페이지 이상 글 쓰고… 이런 육체적인 것들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나태 속으로 빠지게 되는 걸, 이미 여러 번 경험했거든.
1. 나태를 즐기지 마.
2. 몸을 움직여. 운동하고, 사람을 만나고, 할 일을 해. 술 먹지 말고, 일찍 자.
3. 그것이 무엇이든 오늘…오늘…오늘..해~~!!!
4. 여전히 너는 너야. 조금 구겨졌다고 만원이 천 원 되겠어? 자학하지 마, 그 어떤 경우에도, 절 , 대, 로.
나를 정말로 힘들게 했던 것은, 책임감. 내가 혼자 처리해야만 했던 그 상황들
시련은 그대를 강하게 만든다.
“로마를 로마로 만든 것은 시련이다. 전쟁에 이겼느냐 졌느냐 보다 전쟁이 끝난 뒤에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나라의 장래는 결정된다.”
중요한 것은 시련 자체의 냉혹함이 아니다. 그 시련을 대하는 나의 자세
내가 힘들게 받아들이면 힘든 것이고, 내가 의연하게 받아들이면 별 것 아닌 것이다.
‘신은 사랑하는 인간을 시련으로 단련시킨다’
시련은 그대의 힘이다.
출구도, 비상구도 보이지 않는 진퇴양난의 위기. 어떤 목표를 이루기는 너무나도 벅차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기는 너무나 아쉽고 또 두려운 괴로움.
바닥이 보이지 않아 깊게 느껴졌을 뿐,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 인생에서는 항상 그렇다. 우리는 겨우 30cm 정도 위에서 죽을 줄 알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항상 그렇다.
보이지 않는 바닥이 두려운 것이다.
다음해에는 합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과감히 포기하겠다는 용기도 갖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보낸 1986년은 내게 참으로 어둡고 또 길었다.
겨우 이 정도 실패에 좌절 할 만큼 나는 나약한가? 하는 자책이 정말 집요하게 나를 괴롭혔다. 포기하는 것이 지속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그때 절감했다. 어쩌면 도전보다도 더 큰 용기를 가지고, 겨우 밧줄을 놓았다.
고시를 때려치운 이후, 두려워했던 것보다 바닥은 깊지 않았다. 온몸이 부스러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발목도 삐지 않았다. 몇 달 동안 삶의 여백을 가지면서 힘을 얻은 나는 무사히 석사장교를 마친 후 박사과정에 진학했고, 유학도 떠날 수 있게 됐다.
포기가 항상 비겁한 것은 아니다. 실낱같이 부여잡은 목표가 너무 벅차거든, 자신 있게 줄을 놓아라. 대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날개를 펼쳐라.
포기가 항상 비겁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불굴의 의지가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사람은 쇼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는 쇼핑과 다르다. 인간관계란 좋은 파트너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좋은 파트너가 ‘되는’일이다.
사람들은 자꾸만 ‘밑지지 않는’ 선택을 하려고 한다. 관계란 호혜적인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도 밑지지 않겠다고 나오는 순간, 서로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이 불가능해져 버린다.
어장관리를 하는 친구들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사랑에 중독된’ 그들은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서 자아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한다. 그들은 아무도 자기를 사랑하지 ㅇ낳는 상황을 끔찍하게 생각한다.
‘그냥 좀 아는 사람’ 수백 명보다, 영혼을 기댈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중요하다. 그 한 사람이 그대의 커다란 바다다.
그대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랑에 빠질 수 있는가? 나의 빈 곳을 채워줄 수 있는 숨 막히는 그 매력만으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를 사랑할 수 있는가?
청춘은 그럴 수 있다고, 적어도 청춘은 그래야 한다고.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누군가를 그렇게도 사랑하고 있는 로맨틱한 감정에 놓인 자기 자신’을 사랑
최선의 자기, 최선의 상대를 만들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라. 결국 그럴 수 없다고 한다면, 사랑 따윈 필요 없다.
바보들은 결의와 각오만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정작 실천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나태와 타성으로 포기하기 일쑤
진정한 몰두를 위해서는 자신으로부터 혁명이 필요하다. 무엇을 성취하고자 할 때, 충분한 재능을 가졌는가는 부차적인 문제다. 문제는 우리 삶을 바꾸고, 동시에 우리 삶을 지탱해나갈 수 있을 만큼 몰두할 용기를 가졌는가, 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오답노트
중요한 것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한 번 했던 실수를 다시 하지 않는 것이다.
황영조 선수도 1988년 강릉 명륜고 1학년 때부터 1996년 은퇴할 때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훈련일기
성공하는 사람은 다르다.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능력이 있다.
청춘이 정녕 힘든 이유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미래가 불안한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그만큼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
선택의 여지가 줄어들면 당연히 고민의 폭도 좁아진다.
그대, 실은 더 고민해야 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원점에서 검토하라. ‘나는 그래도 배울 만큼 배웠다’는 알량한 기득권 의식일랑 집어 던져라. 혼자서 머리 싸매고 이런저런 상념 속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다양한 정보를 찾아 나서라. 좋은 결정은 항상 좋은 정보에서 나온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폭넓게 책을 읽어라.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같은 어둠 속에서 헤매지 말고, 앞서 삶의 길을 걷고 있는 선배와 스승들과 깊은 얘기를 나누어라.
작은 고민들을 사랑하라. 필연이다 온몸을 던져 생각하고, 번민하고, 숙고하라.
청춘이 정녕 힘든 이유는 부단히 쌓아야 하는 스펙 때문이 아니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모두 무섭게 마련이니까.
죽도록 힘든 네 오늘도, 누군가에게는 염원이다.
욕망의 빛을 향해 달려들다가, 소유를 위해 꽉 움켜쥔 주먹을 펴고 버리지 못하다가, 일생을 망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힘들거든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잘나간다 싶거든 자기보다 높은 사람을 올려다보라’ 힘들다고 좌절하지 말고, 잘나간다고 교만하지 말라는 의미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그대의 좌절조차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게는 그대의 힘겨운 오늘이, 자신은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호사일 수 있다.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는 불평을 하느냐 감사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죽고 싶도록 힘든 오늘의 그대 일상이, 그 어느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염원한 하루라는 것을.
현실에 치열하자.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보다, 꿈꾸기를 망각하는 것이 백배는 더 무섭다.
내가 작은 성취에 마취되어 꿈꾸기를 천천히 잊게 되거나, 삶의 치열함을 차츰 잃게 될 것이 두려워서 이 글을 쓴다.
읽고서 바로 자신을 추스를 만큼 나의 영혼은 그렇게 그만큼 날씬할까.
그 사람이 너를 떠난 건, 네가 충분히 갖지 못한 ‘그 무엇’ 때문이야. 그가 내심 기대했지만 너는 충분히 줄 수 없었던 ‘그 무엇.’ 그러면서 실은 한 번도 네게 정확히 말하지는 않았던 ‘그 무엇.’ 바로 그것 때문에 그는 떠났어.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너를 추스를 수 있는 출발점이야.
네가 겪고 있는 힘겨움은 실은 호르몬 때문만이 아니거든. 그 절반은 네가 스스로 만들고 있는 거야.
내 생각에 너의 좌절은 그 사람에 대한, 혹은 자신에 대한, 시위인 것 같기도 해. “봐라, 나 이렇게 아파한다.”고 처절하게 보여줌으로써 그에게 죄책감이, 후회가, 아쉬움이 들게 하고 싶은 건 아닐까?
혹시 기회가 오더라도 그와는 다시 만나지 마.
‘그 무엇’이란 무척 상대적인 것이거든.
너보다는 자신을 더 사랑하기에 떠났어. 우린 모두 이기적이잖아. 하지만 누군가, 서로에게 이기적이고 싶지 않게 되는 사람이 저 거리 어딘가에 분명히 있어. 우리는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야
기적이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작심삼일 당연하다, 삶의 방식이란 결심이 아니라 연습이니까
습관을 바꾸는 일은 뇌 구조가 변해야 가능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달의 반복이 필요하다고 한다.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심삼십일’은 돼야 습관을 고칠 수 있는 것이다.
삶의 방식은 결의가 아니다. 연습이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더딘 것을 염려하지 말고, 멈출 것을 염려하라.
연습은 많은 ‘오늘’들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내일은 없다. 그러므로 내일부터가 아니라, 오늘 조금이라도 한번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대, 부대껴야 한다.
스펙에 도움이 되는 클럽이 아니라,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모임에 가입해야 한다.
남이 나에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말과 행동을 하고, 남이 나에게 했을 때 즐겁지 ㅇ낳은 짓은 하지 않는 것
인간은 기본적으로 매우 자기중심적이어서 자기 자신에게 관대하고 또 스스로 합리화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역지사지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매일매일 자신에게 던져야 한다. 그리고 그 반성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일상 속에서 늘 ‘입장 바꾸기’를 연습해야 한다.
신문을 읽으라는 것이다.
한 신문을 정독하는 것이 포털의 여러 기사를 검색해 읽는 것보다 훨씬 장점이 많다.
자기주도적 정보검색 x
신문에는 내가 관심 없는 정보일지라도 일단 종이 가득 실려 있기 때문에, 요즘 무엇이 중요한 이슈인지 쉽게 알 수 있게 해준다. 비록 자세한 내용은 읽지 않고 지면을 넘기더라도 기사의 제목이나 면 구성을 흘깃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맥락적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모든 정보원 가운데 필요한 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주는 것은 단연 신문이다 신문은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가장 유용하고 많은 정보를 준다.
그대가 조직의 의사결정자를 꿈꾸고 있다면, 아니 최소한 ‘주류’의 흐름을 간파하려면 그들의 정보 원천과 그를 바탕으로 한 사고의 논리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요즘에는 신문사 별로 논조가 극명하게 다르므로, 대조적인 견해를 싣는 신문 두 종류 정도를 함께 읽는 다면 더욱 좋을 것
약간 비린 듯하면서도 산뜻한 신문잉크 냄새로 아침을 여는 청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신문은 여전히 힘이 세다.
자기 전공에서 일가를 이룬 대가들이 명쾌한 언어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때, 그 울림은 예사롭지 않다.
‘사람의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을 쓰는 능력’
좋은 문장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은 더 강해졌다.
그 이후 좋은 글을 써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글을 잘 쓰려면 생각에 깊이가 있어야 하고, 논리와 구성이 탄탄해야 한다. 글을 잘 쓸 수 있으면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설득력 있게 자기를 표현할 수 있다. 이는 사회생활을 할 때 가장 필수적이고 중요한 능력이다.
현대는 통섭과 융합의 시대
다양한 지식을 흡수하며 시대의 요구에 맞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학벌이나 스펙보다 중요하다.
지금의 전공과 다른 어떤 전공을 접목시키면 최대의 시너지가 날 수 있는가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는가?
지식에는 서열이 없다. 시대의 수요가 있을 뿐
승부를 뒤집는 그 ‘한 방’은 매우 작은 차이들이 쌓여서 만들어진다. 눈에 크게 띄는 승부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하루하루의 훈련과 준비가 수없이 모여야 한다. 훈련장에서의 미세한 차이들이 차근차근 모여 비등점을 기다리다가 경기장에서 한순간에 끓어오르는 것
우리가 겪어온 어떤 시험이든, 그 하루 시험장에서의 컨디션이 아니라 치열한 연습이 모여 결판나지 않던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인생을 스포츠보다는 모자이크 퍼즐에 비유하기를 좋아한다. 큰 ‘한 방’이 아니라 작은 ‘하나하나’가 쌓여야 하는, 대략 29,220피스를 맞춰야 하는 커다란 퍼즐
많은 사람들이 빨리 성공하고 싶어 한다.
시계보다 필요한 것은 나침반
나아가 나침반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거울
인생의 성공이란 커다란 한 번의 성취가 아니라, 매일매일의 작은 승부로 직조하는 것
획기적인 승부처, 전환점만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무능한 사람일수록 ‘이것만 되면, 이때만 오면….’
시간은 영혼을 만드는 유일한 재료라고 했다.
‘딱 오늘 하루만이라도 담배를 참자’고 시작하는 사람들이 성공한다. 그렇게 작은 하루하루의 실천을 쌓아가면서 성공을 거두는 것
순간적인 깨달음을 기다리지 말고, 작은 실천을 먼저 행하라.
‘이걸 위해 오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
“어느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결말을 맺을 수는 있다.”
지금부터 그대의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라.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보게 될 그대 인생의 커다란 그림을 생각하라. 오늘 하루 때문에 그 멋진 완성품의 한 구석이 듬성듬성 비어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2000년 0시를 기해 전 다섯 가지를 끊었습니다. 술,담배, 골프, 유혹, 도박 입니다.
그래도 술 안 먹고 골프 안 하고 딴 마음 안 먹으니까 시간이 많이 남아요. TV는 원래 안 보았고요. 그 시간에 책 보고 글 쓰고 하는 거죠. 책은 하루에 한 권 정도 읽어요.
매년 10월에 책 한 권씩 내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매일 200자 원고지 20~30장 분량의 글을 써서 저장해둡니다. 이렇게 생활하다 보면 1인 다역을 할 수 있어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시간 없다’입니다.
‘성공한 사람의 하루는 25시간, 실패한 사람의 하루는 23시간’
시간관리란 목표의 함수다.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한다. 영어공부 몇 시간, 운동 몇 시간 하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구성하는 ‘계획을 위한 계획’은 의미도 없을뿐더러 중간에 포기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곁가지가 많으면 큰 나무가 되지 못한다. 시간관리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여기저기 곁으로 쓰는 시간이 많으면 큰 꿈을 이룰 수 없다.
버릇이 들어 하게 되는 행동, 다른 대안이 없어 하게 되는 행동, 그리고 다른 사람 때문에 할 수 없이 하게 되는 행동
지금 생각해보면 돈도 돈이지만, 그 시간들이 아까워서 견딜 수가 없다. 버릇으로 굳어져 끊지 못해 들렀던 당구장. 막상 큰 즐거움도 주지 못하고 내 미래를 위해 아무것도 남겨주지 못했던, 그저 버려진 시간들……
요즘 학생들에게는 웹서핑이나 게임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줄이고, 끊어라. 특히 게임은 반드시 끊어라. 훗날 돌이켜봤을 때 청춘의 시간을 허비한 후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그냥 때우는시간이 많아 질수록 존재의 두께는 얇아진다.
게임보다는 독서를,
인터넷 서핑보다는 신문 읽기를,
늦잠보다는 피로를 푸는 토막잠을,
‘15분 내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지금 바로 해결한다’는 원칙
자투리 시간에 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것 중 하나는 ‘자신을 만나는 것’
자신과 대면하는 일은 자신의 역량을 어떤 방향으로 길러 나가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한다.
많은 청춘들이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그러고는 다들 쇼핑하듯이 유행하는 스펙을 쌓느라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주워 담는다.
주변 경쟁자들과 별로 차별화되지 못한다.
철저한 자기와의 대면이 없으면,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목표의식도, 지금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에 대한 현실인식도 가능하지 않다.
찜질방 사우나에 들어가 얼마나 버텨보았는가? 15분은 무지하게 긴 시간이다.
바빠야 시간이 난다
정작 여유가 생겼을 때, 계획하던 그 일을 제대로 한 적이 있었는가?
바빠야 오히려 시간이 난다는 것
한가할수록 쓸 수 있는 시간은 더 생길지 몰라도 치밀한 시간관리의 의지가 함께 줄어들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지금의 그대는 미래의 그대에게 얼마나 당당할 수 있는가? 시간을 그렇게 사용하라. 미래의 그대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인간의 삶에서 시간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시간은 우리 영혼을 만드는 재료
카르페 디엠 사용법
인생을 즐긴다는 것이 단지 쾌락적인 삶을 산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필요한 순간에는 절제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지는 순간순간에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인생을 즐기는 진정한 태도
지나간 나날에 대한 후회로 현재를 채워서는 안 된다.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필요없는 의무감으로 현재가 비참해져서는 안 된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현재가 흔들거려서는 안 된다. 자신의 목표를 확고하게 하고, 그 목적지를 향해 순간순간의 발걸음을 뚜벅뚜벅 옮길 수 있을 때 현재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진정으로 ‘카르페 디엠’하려면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야 한다. 비록 꿈의 내용이 구체적이지는 않더라도, 어떻게든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만큼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불교에서 연꽃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는 더러운 ㅈ2ㅣㄴ흙탕 속에 뿌리를 두고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절망적인 여건을 딛고 생의 성취를 이룬 이들의 이야기는 연꽃처럼 아름답다.
연꽃의 향기가 진하게 배어나온다.
라임
하나의 작은 제약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규칙
한 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이 깊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거침없는 욕설로, 그 욕설이 다시 시이자 음악으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라임
그대에게는 스스로 지켜내는 제약이 있는가?
그대의 삶에는 규칙과 리듬이 있는가?
기적이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꾸준함의 힘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연습하는 자와 저축하는 자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수할 수 있는 능력.’
이게 처음이자 끝이야. 이;게 전부야.
‘마시멜로 능력’
네가 훌륭하고 행복한 인생을 사는 거야.
성장은 좌절에서 오는 거야. 잘나갈 때에는 아무도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지. 실패를 경험해야, 그때 가서야 뭐가 문제였는지 돌아보거든.
처절한 실패보다 어정쩡한 성공이 훨씬 더 위험해.
지금 이 재수의 기간도, 흘러가는 것이 안타까운 소중한 네 인생의 엄연한 일부
그것은 낭비된 시간이 아니라, 실은 네 인생을 평생 향도 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
‘오늘’이 변화해야 하거든. 실천하지 못하는 결심이란, 한낱 자위일 뿐이거든.
하루하루 조금씩, 조금씩 실천하고 살짝살짝 늘어가는 그런 능력인 거야
내일부터가 아니야. 지금부터야. 내일은 지금, 오늘이 만드는 거라고.
이제 한숨을 거두고, 바로 지금부터 너의 오늘을 바꿔.
네가 내린 결정으로 삶을 인도하라
자신의 기준으로 자식의 미래를 재단하려는 부모의 월권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보기에 인기 있는 일이 아니라 ‘내일’ 중요하게 될 일을 하고자 했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 여길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을 하고자 한 결과
일단 그렇게 진로를 정하고 나니까, 그렇게 안 풀리던 일들이 일사천리로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사람의 진로란 남이 좋다고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즐겁게 할 수 있는데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제에 연연하면 내일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법
김 교수는 제대로 깊이 있게 연구한 게 하나도 없군요. 적어도 나는 기성의 성취에 안주하지 않았다고. 어제와 오늘에 안주하지 않고 ‘내일’이 이끄는 삶, 남들이 좋다는 주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 일’이라고 여겨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
늘 ‘지금의 나’ 를 뛰어넘을 것을 생각하라. 기성의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잠재력을 끝없이 확대해야 한다. 자기 세계에만 안주하고 있으면 무뎌진다.
당장 좋아 보이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늘 같은 레퍼토리만 반복하고 살아야 한다면 너무 지겹지 않겠는가?
알은 스스로 깨면 생명이 되지만, 남이 깨면 요리감이 된다
‘내 일’을 하라. 그리고 ‘내일’이 이끄는 삶을 살라.
사회와 조직을 끌고 가는 톱의 자리에는 비명문대, 심지어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분들이 여전히 훨씬 많다.
먼저 명문대 출신들의 보수적 성향을 지적할 수 있다. 조직에 몸담고 있든, 자기 사업을 하든 톱의 자리에 오르려면 자기를 모두 내던지는 ‘생의 도박’이 필요한데, 명문대 출신은 이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상대적인 학벌의 기득권을 활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보수적으로 진로계획을 설정하는 편이다.
MBA의 효과는 단 1년 뿐
브랜드의 핵심은 ‘하나의 초점’이다. 그대가 가장 잘하는 것, 그 한 가지에 집중해 그대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어라.
자신만의 이야기
조직이 움직이려면 참으로 다양한 인재가 필요하다.
자신이 무엇을 제일 잘하는지 빨리 깨달아야 한다. 스스로의 지향점이 분명해야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자기 인생의 지향점에 대한 깊은 성찰
경제적으로 넉넉하니까 어떤 위기의식 같은 것이 없었다.
“헝그리 정신이 없다”
청년기에 마땅히 가져야 할 삶의 각성을 마취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절실함을 잃으면 미래가 흐려진다.
그대의 가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라. 동력으로 삼아라.
일의 가치를 당장의 수입으로 환산해 평가해서는 안 된다. 대신 그대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일의 가치를 매겨라.
돈보다 소중한 것, 그것은 바로 그대의 미래다.
자신의 전 생애적 가능성에 대한 모색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당장 취직이 급하고 안정된 생활이 아쉽다. 긴 호흡으로 자신의 ‘커다란 꿈’을 찾아가겠다는 학생은 보이지 않고, 딱히 쓸 데도 없을 것 같은 자격증에만 관심을 둔다.
왜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그대의 잠재력을 믿지 못하고 코앞의 이익에 무너지려고 하는가?
사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첫 직장이 아니라 마지막 직장이다. 첫 한 방으로 승부를 결정지으려고 하지 말라. 마지막에 누가 웃을지 보자며, 호흡을 길게 가져갔으면 좋겠다. 취업을 그대의 ‘거대 생애 계획’의 틀 속에서 전략적으로 생각
세상은 급변한다. 그리고 인생은 길다.
입으로 축하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이렇게 시리다.
사실 우리 사회의 조직문화에는 문제가 많다. 개인의 희생을 너무 많이 요구한다. 조직과 개인이 더불어 행복한 조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사회에서는 조직생활을 잘한다는 것이 개인의 행복이 아닌 희생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성공적인 인생이란 사회적 성취와 개인적 행복을 어떻게 조화시키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파우스트’식의 거래. 성취를 위해서 영혼을 팔겠다는 것
많은 것을 포기한다. 취미를 그만두고, 가족이나 친구와 멀어진다. 개인적 만족을 주는 일에는 등을 돌리고 업무에 관련된 일에만 힘을 쏟는다. 직장이 자신의 유일한 우주로 변한다.
자기의 삶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자신의 전 생애적진로계획의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가지고 스스로를 먼저 납득시켜야 한다. 약간의 승급에 현혹되어 이직을 결심하는 파우스트적 거래나,
가장 아둔한 행동은, 경력개발을 이 회사 저 회사 옮겨다니며 조금 더 높은 대우를 향해 차근차근 사다리를 오르는 일로 생각하는 것
직장생활에는 때로 당장 좋아 보이는 제안이나 달콤한 상상을 거부하고, 지금 자신이 서있는 곳에서 얼마나 큰 성과를 보일 수 있는지 스스로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우직함
그런 우직함 없이 메뚜기 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에 신의 없는 외톨이가 돼 있는 자기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음의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라.
지난 꿈을 종종 회상하고 다가올 미래를 설계하라. 그런 노력들이 하나둘씩 모일 때, 그대의 삶은 팽팽한 줄 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균형의 끝자락에 성공과 보람의 조화가 닿아 있음을, 그대는 알게 될 것이다.
사회는 외줄을 타는 곳이다. 일의 성취와 개인적 행복 사이에서 외줄을 타야 하고, 떠날 것인가 머물 것인가의 고독한 의사결정의 외줄을 타야 한다. 그래서 균형이 중요하다. 어느 한쪽으로 무너지는 순간, 삶 전체가 균형을 잃는다.
결국 자기성찰이 중요하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학생 때보다 훨씬 바쁘기 때문에 ‘분주 속의 나태’가 일상화된다. 그렇게 자기를 잃는 순간, 균형은 무너지는 것이다.
마음의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라. 지난 꿈을 종종 회상하고, 다가올 미래를 항상 설계하라. 주어지는 기회가 기회인 줄 알 수 있도록 늘 준비할.
해가 지날수록 내 자신이 성숙해짐을 느낀다.
교수로서 나의 전성기는 아마도 쉰다섯에서 예순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차츰 나의 전성기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점점 나의 전성기에 다가가고 있다는 기대감에 마흔 됨이 즐겁다.
그들은 흔히 자신의 시계를 졸업 직후에서 한 10년 이내로 한정하는 조급함을 보인다. 늦어도 30대 초반에는 주위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지위에 오르려는 성급함
대체로 그들은 이때 인생의 큰 승부가 모두 난다고 여기는 것 같다.
나는 20대의 비릿함과 30대의 미욱함을 이제 벗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그렇게 살고만 있는 나이
스무살
당장 보기에는 그럴 듯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길게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는 선택을 아무렇지 않게들 해.
20대는 사람을 배우고, 사회를 배우고, 그리고 인생을 배워야 하는 시기야. 네가 대학생이 되면 뜨거운 열망을 가지고 세상에 뛰어들었으면 좋겠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많은 시도와 실수를 해보았으면 좋겠어.
아직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목표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더라도 다양한 도전을 계속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누구보다도 뜨거운 열망을 가슴에 품을 수 있었으면 조헥ㅆ어. 그런 도전을 평생 끊임없이 계속 했으면 좋겠어
“If you don’t’ know where yor’re going, just go.”
실수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야.
되도록 많은 벽을 두들기고, 되도록 많은 문을 열어봐. 청춘이라는 보호막이 너의 실수를 용인해줄 거야.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댓글 없음:
댓글 쓰기